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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삼지창
제조사 고려도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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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가격 40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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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삼지창 腰鉤 


 

요구삼지창 腰鉤 은  삼지창 밑에 2개의 갈고리가 달린 모양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 등 조선시대의 반차도를 보면, 국왕의 어가를 호위하는 협련군 狹輦軍 들은 모두 긴 창날 옆에 갈고리가 달린 마늘창을 들고 있다. 이 창은 허리에 갈고리가 달려 있다고 해서 요구창이라고 했다.

반차도에 나오는 요구창의 보조창날은 주창날의 반대 방향으로 뻗어 있기도 하고, 혹은 주창날과 같은 방향으로 뻗은 경우도 있다. 조선 후기 요구창의 자세한 제원과 형태는 <<훈국신조기계도설>>에 소개되어 있다.

요구창의 자루는 길이가 7척 5분 (218.55cm)이고, 창날의 길이는 1척 5촌(46.5cm)이며, 날 폭은 7분(2.17cm)이다. 역날의 길이는 5촌 5분(17.05cm)이며, 전체 창날의 무게는 1근 8냥(963g)이다. 자루끝에는 4촌(12.4cm) 길이의 철준이 달려 있다. 창자루 끝에는 자루의 갈라짐을 막아주는 상투 上套를 먼저 끼우고 , 그 위에 투겁창 구조의 창날을 끼운 뒤 못으로 고정했다. 창자루의 위쪽은 붉게 칠하고 아래는 검게 칠했다.

이 요구창은 연산군 시대부터 국왕의 가마를 호위하는 시위 군사들이 사용했다.

연산군10년에 국왕이 " 창검에 역인 逆刃 을 덧붙여 사람들로 하여금 범하지 못하게 하라" 고 명했던 것으로 보아, 요구창의 갈고리는 실전적인 목적보다는 위엄을 보이려는 목적에서 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만기요람>>을 보면, 요구창은 협련군을 맡았던 훈련도감에 수백자루가 보관되어 잇고, 그밖의 군영에도 소량이 비축되어 있다. 한편 <<민가요람>>을 보면, 금위영에 160자루의 난후창 欄後槍 이 있는데, 난후 欄後는 어가의 뒤쪽을 말하므로, 이 또한 국왕의 행차시에 어가 뒤쪽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지녔던 창이다.

다만 당시에 난후대 欄後隊는 훈련도감 소속이었으므로, 금위영에 비축된 난후창은 난후대가 아니라 이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했던 금위영의 창검군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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