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검 및 검도관련 정보

일본도검이 유명 하지만 이제 한국 고려도검 도검 2023-12-22 09:45:29
admin 조회수 :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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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특히 카타나의 발전은 일본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검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카타나(katana)로 곡선형의 가느다란 칼날과 외날 디자인이 특징인 독특한 장검입니다. 일본도의 발전을 강요한 역사적 배경은 다양한 시기를 통해 추적할 수 있습니다.





  1. 봉건 일본(헤이안 시대 이전부터 가마쿠라 시대, 794~1333년): 일본 역사 초기에는 다양한 씨족과 세력 간에 전쟁이 흔했습니다. 효과적인 무기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카타나의 전신인 타치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초기 검은 종종 가장자리가 아래로 착용되고 가장자리가 벨트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전쟁이 발전함에 따라 검의 디자인과 사용법도 발전했습니다.




  2. 가마쿠라 시대(1185~1333): 사무라이 계급이 부상하고 라이벌 가문 간의 전투가 증가한 시대입니다. 기병 기반 전투에서 보병 전투로의 전환은 검의 디자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유의 곡률과 날카로움을 지닌 카타나는 이 시기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변화하는 전장 역학과 빠른 그리기 기술(iaijutsu)에 대한 강조가 카타나 개발에 기여했습니다.




  3. 무로마치 시대(1336~1573): 내전과 갈등으로 얼룩진 전국 시대는 사무라이와 검의 역할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차등 경화(날이 더 단단하고 척추가 부드러워짐)와 ​​같은 검 제작 기술의 발전이 카타나의 강도와 날카로움에 기여했습니다. 이 시대에는 또한 검 디자인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츠바(손 보호대)가 등장했습니다.




  4. 에도 시대(1603~1868): 에도 시대는 도쿠가와 막부 치하에서 상대적인 평화와 안정이 특징이었습니다. 대규모 전쟁이 줄어들었지만 사무라이는 계속해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카타나는 사무라이 지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검술은 세련된 무술로 발전했고, 카타나는 무기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5. 메이지 시대(1868~1912): 메이지 유신은 일본의 정치, 사회 구조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무라이 계급이 폐지되고 근대화 노력이 진행되었습니다. 공공 장소에서 검을 착용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카타나의 전통적인 역할이 쇠퇴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검이 압수되고 파괴되었습니다.





일본도의 역사적 발전은 전쟁과 사회 구조의 맥락에서 효과적인 무기에 대한 필요성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카타나의 문화적 중요성과 장인 정신은 지속되어 일본 무술 유산의 상징적인 상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일본 도검 제작 기술과 카타나에 대한 감상은 계속해서 일본 문화의 가치 있는 측면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국의 조선왕조(1392~1897)에는 다양한 종류의 도검이 발전하고 진화했습니다. 이 시기의 도검 문화는 한국 고유의 전통과 중국, 일본 등 주변 국가와의 교류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조선시대 도검의 발전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조선전기(14세기말~16세기):







  • 고려도검의 전환: 고려를 계승한 조선왕조는 초기에는 고려식 도검의 사용이 지속되었다. 이 조선 초기 검은 종종 고려 시대의 도검과 유사한 구부러진 칼날을 특징으로 합니다.




  • 중국의 영향: 조선 전기에는 무술, 무기 등 중국 문화의 영향이 컸다. 이러한 영향은 종종 중국 검(직검)과 유사한 조선 초기 도검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조선중기(17~18세기):







  • 일제의 침략과 검술에 미친 영향: 일제의 침략이라고도 알려진 임진왜란(1592~1598)은 한국 사회와 무술 전통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침략 동안의 전쟁 경험은 한국의 무기와 무술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 환도의 진화: 한국 직검의 일종인 환도가 이 시기에는 더욱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양날의 직선형 칼날이 특징이며 이전의 곡선 디자인에서 벗어난 모습을 반영했습니다. 환도는 군관료나 무술가들이 자주 사용하였다.







  1. 조선후기(19세기):







  • 검 사용의 쇠퇴: 조선왕조가 발전하면서 검을 실용무기로 사용하는 일이 쇠퇴했습니다. 전장에서 총기가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고, 전통 무술의 역할도 바뀌었습니다.




  • 의식 및 상징적 사용: 칼은 전쟁에서 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지만 문화적, 상징적 중요성은 유지했습니다. 검은 권위의 상징이자 무술 전통의 일부로 의식에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1. 조선말(19세기 후반):







  • 근대화와 쇠퇴: 19세기 후반 한국은 서구열강의 외압과 내분 등 큰 변화를 겪었다. 현대화 노력의 일환으로 검을 비롯한 전통 무기의 사용은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조선시대 한국도의 구체적인 디자인과 특성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선의 검 전통은 다른 동아시아 문화만큼 광범위하게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에는 격차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한국 조선의 도검의 진화는 원주민의 발전, 지역적 영향, 역사적 사건에 대한 반응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반영합니다. 오늘날 조선시대 검술 기술의 연구와 보존을 포함하여 한국의 전통 무술과 무기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2022년 1월 지식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일본도와 한국의 전통도 모두 독특한 특성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검의 "현재 수준"을 평가하려면 장인정신, 재료, 기술 및 문화적 중요성을 평가하는 것이 포함된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비교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 검:





  1. 카타나:







  • 장인 기술: "니혼토"로 알려진 일본의 검 세공은 길고 존경받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장인은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며 카타나 제작에는 단조, 접기, 차등 경화를 포함한 여러 단계가 포함됩니다.




  • 재료: 종종 타마하가네와 같은 고품질 강철이 사용됩니다. 단조 중에 강철을 접는 과정은 블레이드의 강도와 유연성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문화적 중요성: 카타나는 일본 문화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정신적, 예술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종종 사무라이의 상징으로 간주되며 규율과 명예를 나타냅니다.







  1. 와키자시와 탄토:







  • 다양성: 일본에는 카타나 외에도 와키자시, 탄토 등 각각 고유한 특징을 지닌 짧은 검을 제작하는 풍부한 전통이 있습니다.




  • 다양한 학파: 수세기에 걸쳐 각기 독특한 스타일과 기술을 지닌 다양한 검술 학파가 등장했습니다.





한국 전통 검:





  1. 환도:







  • 장인 정신: 한국의 도검 제작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일본 전통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특한 특성을 발전시켰습니다. 환도 제작에는 칼날을 세심하게 단조하고 모양을 만드는 작업이 포함됩니다.




  • 재료: 한국의 전통 도검은 강철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장인 정신은 견고함과 유연성의 균형을 강조합니다.




  • 문화적 의의: 한국도는 문화적,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술 전통과 연관되어 있으며 의식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1. 금:







  • 다양성: '금'이라는 용어는 한국도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검'(외날검), '협도'(양날검) 등 다양한 유형을 포함합니다.




  • 중국의 영향: 초기 한국 도검은 중국 디자인의 영향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특한 한국 스타일이 등장했습니다.





비교:





  1. 장인 정신:







  • 일본 도검: 세심한 장인정신으로 유명한 일본 도검 제작 기술은 수세기에 걸쳐 정제되어 왔습니다.




  • 한국 전통 검: 토착 기술과 주변 문화의 영향이 독특하게 혼합되어 있습니다.







  1. 재료:







  • 일본도: 고품질 강철의 사용과 특정 접는 기술을 강조합니다.




  • 한국의 전통검: 강철을 활용하여 단단함과 유연성의 균형을 맞추는 데 중점을 둡니다.







  1. 문화적 의의:







  • 일본도: 일본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명예, 규율, 사무라이 생활 방식을 상징합니다.




  • 한국 전통 검: 문화적, 역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으며 종종 무술 및 의식과 관련됩니다.







  1. 다양성:







  • 일본도: 카타나, 와키자시, 탄토가 포함되며 각각 다른 용도로 사용됩니다.




  • 한국의 전통검: 환도, 검, 협도 등 다양한 종류를 포괄합니다.





일본도와 한국도 모두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으며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중요성으로 인해 가치가 높습니다. 이 검에 대한 평가는 기능적 측면을 넘어 검이 만들어지고 사용된 더 넓은 문화적 맥락을 포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한국 고려 도검 제작소 2세 문준기가 도검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년은 후쿠오카 언어연수 및 4년의 미야자기 휴가이 에서 도검제작기술을 연마하는 것은



극한직업에 다큐를 통해 알수 있습니다.



. 고려도검공장은 한국의 전통검을 생산하는 곳으로 30년 경력의 고참 장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도검제작자는 대부분 대학의 도검학과나 국가에서 지정한 교육기관에서 기초부터 배워서 그기술을 토대고 반복숙련 하여 기술을 발전 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냥 혼자 제철기술을 습득하고 산소, 아세틸린의 열처리 그리고 강판을 레이져로 잘라서 산소 아세틸린 열처리후 센딩 그라인더 하고 숫돌 연마하는 수준으로 깊이와 체계와 학문적이면 과학적인 지식이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많은 노력과 연구를 했지만 수십대에 걸쳐 단조 하고 접쇠하고 전통열처리하고 평생 장식만 만드는 사람 검집 손잡이만 만드는 사람 평생 연마만 하는 사람 평생 검날만 만드는 사람이 필요했든 일본처름 발전할수 없었든 것은 사실 입니다.



모든 기술은 테이터화 되어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뛰어난 인재들이 한국의 도검제작소가 된



철공소 등에서 일한 경우는 없었든 것입니다.



해방과 6.25전쟁이후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철공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체계적이지 않지만



차량 스프링이나 기타 획득한 철물들로 잘라서 사용하거나 단조하여 만드는 식칼 및 농기구 제작자의 기술에서 장검이 재현 되고 점차 발전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노력을 한 대장장이업을 한 사람이 한국 도검의 발전을 시키는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기본이 없거나 실제적으로 현장에서 철공업이라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독학으로 제련 제철을 습득한것 처름 행세하고 정부로 부터 지원금 받고 하는 경우를



보고 안타까운 맘이 드나 그나마 그렇게 라로 하는 사람이 없어니 그런 사람이라도 귀한 존재 인것이 한국의 현실 이었습니다.



일본처름 많은 지역에서 도검이 수요 되었고 이때문에 많은 지역에서 도검을 만들고 대를 이어



수십대까지 만드는 전통을 이어 가는 가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아들 문준기를 설득하고 일본의 유명도공에서 유학하게 했어며 이로 인해



고려 도검의 기술이 많이 발전 했습니다.



이 도움 준 일본도공이 松葉一路 선생 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배경 때문에



한국의 도공이 일본에서 일본인으로 부터 전통도검제작기술을 전수 받는 것은 그리 쉬운일은



아니었습니다.



송엽일로 선생은 전 일본 미술도검보존협회 전무이사이고 큐수지역 도장인 협회 회장이면서



큐슈 미야자키 휴가이 에서 도검을 제작하는데 이는 서기 987년부터 지금까지 이지역이



도검 제작에 대를 잇는 유명한 지역임을 알수 있다.



이분은 백제마을 근처에 사는데



큐슈지역이 예로 부터 백제인이 많이 건너가 살았기에 백제인의 피가 흐르는 곳이라



마츠바 선생이 한국인 준기에게 잘 대해주고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아래는 준기 도공이 일본서 도검제작 과정을 극한직업에서 촬영한 내용과



kbs 나 mbc sbs 등 대형 방송사 등에서 찍은 .영상들이 우리 고려도검의 발전사로



남았습니다.



2023년을 마무리 하면서 본인의 출신학교 동기생 송년모임에서 본인 자랑스런 동기생으로



선정되어 그동안의 고려도검 역사라는 단편 촬영본은 편집해보는 기회가 된것을



보여드리고 2023년을 마무리 하면서 최근에 제작하 도검위주로 영상을 올려봅니다.